무언가를 특정 횟수만큼 세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멈출 수 없었던 경험이 있나요? 아니면 병균이 걱정되어 몇번이고 손을 씻은 적은 있나요? 물건이 제대로 배열될 때까지 몇번이고 다시 정렬한 적이 있나요? 무서운 생각이 머리에서 계속 떠올라서 여러분을 괴롭히나요?
이러한 생각이나 느낌, 그리고 생각에 이은 행동을 강박증이라고 부릅니다.
- 답답함
답답하다는 것은 꽉 막힌 좌절스러운 감정입니다. 강박증이 있는 아이들은 일상생활에서 여러차례 답답함을 느낍니다. 그러나 답답함은 누구에게나 불편한 감정임이 분명합니다.
소현이의 이야기를 들어봅시다.
소현이는 강박증을 가진 8살 여자아이입니다. 학교에서 길고 바쁜 하루를 보낸 소현이는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하기 위해 화장실에서 이를 닦음 다음에는 손을 씻습니다. 물비누를 두 번 누르고, 수도꼭지를 틀었다 잠갔다 두번 반복합니다.
몇 초 후, 소현이는 손씻기를 멈추고 걱정이 되기 시작합니다. "아직도 안 깨끗하면 어쩌지?" 그리고 물비누를 두 번 더 쎄게 누르며 크게 말합니다. "하나, 둘" 그리고 다시 수도꼭지를 틀었다 잠갔다 두 번 반복하며, "하나, 둘"이라 말합니다. 소현이는 멈출 수가 없습니다. "더 깨끗하게 씻지 않으면 병에 걸릴지 몰라"
화장실에 들어간지 10분이 넘도록 소현이는 씻고 또 씻고 있습니다. 엄마가 화자아실 문을 노크하며 빨리 끝내고 자라고 합니다. 소현이는 답답한 마음에 엄마에게 묻습니다. "손이 아직 더러운거 같아요. 병에 걸리면 어떻게?" 엄마는 평소 목소리대로 손은 충분히 깨끗해졌고 병에 걸릴 일은 없다고 말합니다. 그 말을 들으니 소현이는 곧 안심이 됩니다.
그러나 이 안심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소현이는 침대로 향하면서 발걸음을 세기 시작합니다. 발걸음은 잠자리에 도착할 때 반드시 짝수로 끝나야 합니다. 오른발을 뻗으며, "하나..."그 다음 왼발을 뻗으며 "둘..."이렇게 세면서 걷다 보니 '아홉'에 잠자리에 도착했습니다. 소현이는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불속으로 들어갔지만 기분이 편하지 않습니다. 발걸음이 짝수로 끝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답답함을 느낀 소현이는 화장실로 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합니다.
- 강박증은 어떻게 시작하나요?
아이에겐 처음 말이 되지 않는, 두려운 생각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자기 자신이나 주위 사람들에게 어떤 나쁜 일이 생길수도 있다는 예감 같은 것이죠. 이러한 생각은 갑자기 자리 잡습니다. 이걸 침투적 생각라고 하는데 기분 좋지 않은 생각이 머릿속에 있다는 것도 괴로운 일이지만, 이러한 생각은 예고없이 갑자기 튀어나옵니다.
강박행동은 이러한 생각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아이들이 취하는 행동을 말하며, 강박행동을 함으로써 자신의 불안함을 줄이려고 하는 것입니다. 위에서 소현이는 손을 계속 씻는 것입니다. 다른 강박행동의 예는 물건을 특정한 방법으로 배열하기, 물건 갯수 세기, 같은 행동 반복하기, 이미 답을 알고 있지만 부모나 친구에게 굳이 물어서 확인 받기, 제대로 되었다고 느낄 때까지 계속 다시하기 등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아이들도 속으로는 이러한 강박행동이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강박증이 있는 아이에게는 강박행동이 말이 되느냐 되지 않느냐는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아이들의 머릿속에는 항상 '어쩌면'이라는 생각이 떠나질 않습니다. 아이들은 스스로 괜찮다라고 느낄 때까지 멈출 수가 없습니다.
침투적 생각에 이은 강박행동을 하는 동안 아이들은 잠시 덜 불안합니다. 그러나 이는 오래가지 않습니다. 강박증은 아이 스스로 의심하게 만들고, 이런 의심은 아이들이 강박행동을 처음부터 다시 하게 만듭니다.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입니다.
빵을 만들어 본적이 있나요?
빵을 만들때, 우선 밀가루를 체에 거른 뒤 다른 재료들과 섞어야 합니다. 체를 가볍게 두르리면 체에 있던 밀가루 덩어리들이 점점 작아지며 체의 구멍을 통과합니다.
사람의 뇌도 체와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의 뇌는 처리해야 할 정보가 아주 많습니다. 매초마다 사람들은 색깔을 보고, 소리를 듣고, 촉감을 느끼며 생각을 하는데 대부분의 경우, 사람의 뇌는 이런 다양한 정보를 아무 문제없이 자연스럽게 처리합니다. 그러나 강박이 있으면, 정보 덩어리가 제대로 체에 걸러지지 못하게 되고, 밀가루 덩어리가 체에 걸러지다 막힐 때가 있듯이, 때때로 생각도 뇌에서 걸러지지 못하고 막힐 때가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제 딸아이는 제가 선물한 미니 화분안에 화초에게 아침마다 물 주는 일을 습관처럼 하고 있는데 아이가 학교에 가기 직전 화분에 물을 주고 집을 나섭니다. 그러나 차가 출발하면 갑자기 '내가 화분에 물 주었나?"라는 생각이 드나 봅니다. 물컵에 물을 반쯤 부어 거실을 가로질러 화분에 조심스레 물을 주었던 기억이 납니다. 분명히 바로 몇 분 전에 화분에 물을 준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만약 안 줬다면? 내가 깜빡 잊고 물을 주지 않았으면 어쩌지? 혹시 모르니깐 지금 다시 가서 확인해 봐야겠어.
강박증이 있으면 분명히 아이 기억속에 물을 준 기억이 있다고 해도 '내가 만약 안 줬다면?'이라는 생각을 멈출 수가 없습니다. 그 불안함이 증폭되어 화분이 말라 죽으면 어쩌지? 이런 생각이 뇌에서 걸러지지 못하고 아이는 실제로 물을 줬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학교에 다녀오는 동안 아빠에게 선물받은 화분에서 식물이 죽는다는 생각을 계속하는 것은 너무 괴롭습니다. 설령 학교에 늦더라도 다시 집에 가서 화분에 물을 주고 오는 것이 가장 나은 선택으로 느껴집니다.
여기서 알아야 할 매우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머릿속에서 생각하는 일은 실제 생활에서 일어나는 일과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아이들 머릿속에서 생각했다고 해서, 그것이 현실에서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주셔야 합니다.
예를 들어, 아이들이 야구 경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해 보면, 아이들은 홈런을 칠 생각을 하고 있고 배트로 공을 칠 때 들리는 시원한 타격음, 바람을 가르고 아치를 그리며 멋지게 날아가는 공, 홈베이스로 멋지게 들어오는 자신을 보고 환호하는 팀원들을 상상합니다. 이런 생각을 한다고 해서 실제로 홈런을 칠 수 있을까요? 아이들의 머릿속에 있는 생각과 상상, 그 자체만으로 홈런을 만들어 낼 힘이 있을까요?
불안한 상상이나 걱정이 아이들의 머릿속에 떠올랐다고 해도, 그것이 실현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아이에게 설명해주어야 합니다.
생각은 그저 생각일뿐입니다.
생각은 현실과 다르고 많은 경우, 생각은 전혀 실제가 아니라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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