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1940년생으로 6.25 한국전쟁을 생생하게 기억하셨고 자녀들에게 전쟁의 잔혹사에 대해 이야기하곤 하셨습니다.
전쟁을 모르는 당신의 자녀들에게 전쟁없는 현 삶에 대한 감사와 현재의 후생이 너무 소중함을 항상 알아야한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습니다.
현재의 삶에 감사해야 하고 평소 누리는 소소한 행복이 얼마나 소중한지 당신은 절대 몰랐으면서도 그래야 한다고 했습니다.
응급실 문을 열고 본 모습은 참담했습니다.
아버진 마치 끈에 매달아 놓은 인형 같았습니다. 차이점은 생동감이라곤 찾아볼수 없는 피골이 상접한 한 노인이 끈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산소호흡기로 고압의 산소를 밀어넣는 기계에 의지하고 계신 아버지를 보고 그제서야 알았습니다.
그간 너무 버거워 외면했던 아버지에 관한 그 많은 난제들의 원인이 분명하게 보였습니다.
' 나이듦 = 노화 '
오랜기간 공황증세에 시달리시다 2년전 어머니를 먼저 보내드리고 치매에 고통받아 오셨던 아버지입니다.
치매 환자는 자기에게 문제가 있다는 걸 아는 경우가 굉장히 드뭅니다. 저는 거짓말을 하는 아버지가 미웠고 아버지는 늘 억울해하고 막말을 뱉곤 하셨습니다.
전쟁때문이었을까요...
늘 걱정과 두려움으로 공황이란 이름의 쥐에게 자신의 삶을 통째로 갉아 먹도록 허락하셨던 거 같습니다.
서울 독산동의 작은 합판 회사에서 60세 은퇴 후에는 공황증세는 더욱 심해지셨고 혈압약, 전립선 약, 녹내장 약, 백내장 약등을 최근 10년가량 꾸준히 드셨습니다. 거기에 더해 치매까지...
강박증세가 심해지면 진단받는 공황이라는 병은 정말 무섭습니다. 일어나지도 않을 거 같은 소소한 걱정거리에 발이 잠기고 벌어지지도 않을 희한한 공상에 손이 묶이는 병입니다.
저의 아버진 퇴직 후 몸이 성하셨을 때는 조금만 아파도 스스로 걸어 병원에 가셨고, 거동이 힘들어지실 무렵부턴 저희들에게 병원에 데려다 달라고 아이처럼 졸라 병원을 찾으셨습니다. 그럴때마다 병원에선 콜레스테롤 수치가 불안정하다, 혈압이 높다, 안압이 높다 등의 진단결과를 들이밀었고 병원의 의료시스템을 맹신하셨던 아버지에겐 하나씩 하나씩 병원에서 단 꼬리표와 처방약이 늘어갔습니다. 안약의 경우는 젊은 사람도 처방에 따르기가 쉽지 않을 만큼 투약시간과 약의 가지수가 제각각이었습니다.
아주대병원에서 처방받은 안약들은 처방에 따른 투약이 까다로웠습니다. 하루 20번 이상의 시간간격들로 투약이 어려웠습니다. 거기에 비용까지 걱정하셨던 아버진 의사의 처방을 무시하고 약이 떨어진 걸 숨기셨죠. 그로부터 4개월이 지나 아버지의 시신경은 90%가 죽었습니다. 아버지를 모시고 아주대를 찾은 저희에게 죽은 시신경은 절대 돌릴수가 없다는 이야기만 들을 수 있었습니다.
저희 삼남매는 오래전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동년배의 분들과 달리 타고난 건강함과 강골이신 체력이셨다는 걸을 정확하게 알고 있습니다. 아버진 강한 신체를 타고 나셨지만 공황때문인지 전쟁때문인지 또 다른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스스로는 약하다 믿으셨고 그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어깨나 허리, 다리에 불편함이 있으시면 엑스레이를 찍어봐야한다는 고집 끝에 병원을 찾았고,
속이 매스껍거나 힘이 없어지는 이유가 현대의 의료로 발견되기 힘든 질병이라 믿으시며 그럴리가 없다며, CT 나 PET 같은 고가의 진단방법으로 인한 확진을 원했습니다. 마치 확진 받아야만 본인의 마음이 편하신 것처럼 확진만이 목표인거마냥 행동 하셨습니다.
과거를 회상하고 후회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압니다.
저에겐 어렸을 적 아버지와 큰 강을 바라보며 낚시를 한 기억이 희미하게 있습니다.
중년이 된 지금의 제게 참 복합적인 감정이 존재합니다.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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